The Light of Eternal Agape 東京アンテオケ教会

The Light of Eternal Agape 東京アンテオケ教会 header image 2

고독과 증오에서의 해방과 가족의 회복

왕따 고민으로

This post is also available in: 일어 영어 중국어 간체 독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 리라”사도 행전 16 장 31 절

이 말씀이 저를 지원했습니다.

예수님에서 많은 은혜와 축복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큰 사랑으a로, 나는 해방되어 왔습니다. 나는 중이었다, 미움도, 슬픔도, 고통도, 외A로움도, 모든 문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자라난
“나는 쿠마 모토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미장 업무를 영위하시고 어머니는 전업 주부였습니다. 어머니는 지적 장애와 함께 정신 분열증을i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나는 위로 언니가 있었지만, 제가 태어나기 전에 어린 나이에 사망했습니몞a. 부모님은 작은 딸을 잃어 내가 태어난 것을 아주 기다려온 것 같습니다.”

“나는 어릴 적 기억이있는가 세 살 전 정도부터이지만, 또 그 당시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거 상태였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만 그냥?잠시 얼굴만 보여주고 아버지가 있지 않은 밤에 너무 외로워하고, 항상 큰 소리로 울고, 아버지를 부르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밤에 돌아와주지 못했습니다. 항상 집에  아버지가 있길?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요즘은 하루 종일 어머니가 나에 대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억지로 내 머리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다다미방에 내쳐치몝e 것이었습니다.

무서워서, 아파서, 너무 힘든 와중에  바닥에서 큰 소리로 괴롭고 슬픔에 있웞眈s니다.

잦은 구타였습니다. 어머니에게서 학대를 받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가 보기못A 불쌍했는지 아버지의 누나와 함께 살면서 나의 돌봐 줄 것을 부탁했습니몞a. 그래서  어머니에서 떨어져 고모와 살게 되었습니다. 고모는 그 무렵 교통 사고 후유증으로, 2,3 년 정도 바닥에 엎드려 살았었지만, 그래도 어械頃몽 학대로부터 저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픈건지도 모르고 성미가 아주 강렬하게 집안에서 날뛰는 다른 동네에 사는 내 친구 엄마에게도 폭력을 가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A 폭행을 일삼기를 몇 년 계속해서 주위도 어쩔 수 없어, 결국 어머니는 정신과?병원에 수십 년 장기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런 어머니가 너무 미워 어머니의 존재를 마음속으로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존재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하지 않으면서 다른 여자와 살고있었습니다. 그런?아버지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많은 부채를 만들어 가족 친족에 불편만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를 원망하고, 저는 “왜 이런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것인가? 하나님은 불공평하다”라고 저주하면서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친구 같은 가정을 보고는 부러워했던 자신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부모 사이에서 사랑 받고 자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고, 욕망으로있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이 안계셔서 친구에게 바보 취급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입학식을 졸업, 수업 참관은 항상 고모가 와서 해주었지만, 어린 나는 주위에 비해 버려진 느낌에 쓸쓸한 기분이었습니다.”

“아줌마는 어머니 대신 다양하게 나에게 대해주고 애정을 쏟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에게서 사랑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랑에 굶주리며 목말라있었습니다.

형제 없이 혼자 성장했지만, 죽은 동생이 살아 있으면, 같이 나누면서 쓸쓸하a지 않았을텐데라고 생각하고  내 생활도 마음도 변화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형제를 원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g은 채 공허함이 언제나 가득한 “외로움” 이었습니다.”

절실한 소원
그런 가정 환경에 놓인 나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에게 소원을 빌었습니몞a. 모두와 멀리 떨어져있어도 “하나님. 제발, 아버지가 집에 와서 함께A 살고 어머니의 병이 완치 되어서 부모님이 사이 좋게 우리 가족 세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며 진심으로 항상 구하고 있었습니다a.

예수와의 만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빚에 쫓기는 일이되어, 일반 사무를 취직, 고모와도 헤어져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스물 두 살 때 세상의 즐거움은 잠시, 백만~삼백만원하는 부채가 나에게도 할 수있었습니다. 남은 것은 빚, 마음의 공허함은 확산되었습니다. (빚은 몇 년간 일해서  갚을 수 있었습니다.)

속마음에 충족되지 않은 기분에 가득차 죽고 싶고 이제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 시간 가까이에 있는 교회당에 가서 혼자서”

“하나님 도와주세요”
매달리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때 기분이 자연스럽게하고 안락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반년 후, 일한 직장에 기독교인 여성이 신입 사원으로 입사했습니몞a. 그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듣고 진짜 하나님을 알게되A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순간 갑자기 예수님의 십자가가 좋아지고,  진정한 하나님은 외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음에 이르게 하a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나는 어느 분의 목숨까지 걸고 사랑을 받고있다라고 하나님의 큰 사랑이 영혼 안에 이해하고 감동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반년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세례의 기도를 했습니다. 내 가슴의 곳에 있었다 벌어졌다하는 구멍은 그 기도를 하는 순간덮어“고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자살을 시도하다.
“예수님을 믿고 얼마되지 않은 무렵, 대인 관계가 잘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싫어지고 또 멍하니 아무 생각없이 한 시간이있었습니다.

불안에 잠을 못자고 항상 수면제를 한 통정도 복용하고, 면도기로 손목을 잘라 죽을려고했습니다. 진심으로 손목을 자르려고 하는 순간, 내가 죽은 후에 애도하는 사람들의 환상이 보여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난 후 범죄인 자살 행위에 대해 깊은 회개를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속에 살아 계십니다.

지금 내가 육으로 살아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하는 것 뿐입니다.”

“갈라디아서 편지 2 장 20 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a 함이니라)”

하나님에 대한 헌신
기독교인이 되어 일년 정도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헌신의기도를 바치고, 해외 선교의 선교사가되고 싶다는 강한 마음으로?신학생 있습니다.

단기 해외 선교에 미국에 갈 수있었습니다. [챠찌온자웨이 플레이어 채플] 로?인도받아 거기서 기도를 요청했는데, 두 가지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a.

“같은 무리의 나가사키 교회에서 만나는 결혼 상대의 이야기였습니다.

상대는 교회의 형제로써 그다지 저와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결혼 상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차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귀국했습니다.”

결혼의 성취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비 기독교인이었던 시간은 복잡한 가정 환경 때문에, 단념해야겠다고 자신에게 말하며 지내왔습니다.

당뇨병의 어머니를 가진 저와 결혼 해주는 상대가 있는지가 가장 불안했습s니다.”

기독교인이되고 나서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이사야 62 장 전체에서 특히 4 절(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a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쀼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당신은 또 “저버리고있다”고 말하지 않고, 당신의 나라는 또 “황량?a고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있다”라고,
당신의 나라는 남편이있는 나라라고 했을텐데. 주님의 기쁨이 당신에게 있고 당신의 나라를 얻음으로 남편을 얻기 때문이다.”

말씀안에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또한 교회 목사 부인에게서 조언도 받고, 결혼을위한 조건을 70 항목주고,기몟?하게되었습니다.

몇 년 후, 모든 항목을 잘 지키고나니 정말 결혼 상대가 나타나서 결혼에 이르a렀습니다. 상대는 미국에서 나타난 남성입니다. 할렐루야.

어머니와의 동거
“결혼하고 몇 년 지나고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는연락이 왔습s니다.

이혼을 하지 않고 호적을 내버려두고 별거 생활 30 년여 만에 아버지와 어머頃몓a 함께 살 수없는 말을했다.

그래서 외동딸 내가 강제로 그말을 거부했습니다. 목사인 남편과 당시 두 살된 딸과 셋이서, 쿠시로 살기 시작하고 일년이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데리러 갈 여비와 시간이 문제었지만, 곧 기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쿠마모토에 사는 어머니를 데리러 갈 출발 일, 쿠시로 집을 나갈 때 큰 무지개가 하늘에 있었습니다.

축복의 약속인 무지개, 남편과 함께 감사했습니다.”

내가 6학년 때 어머니와 떨어져 있으므로, 이십년 만에 동거 생활이 시작되A었습니다. 어머니는 쿠시로 오는 몇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을했둺s니다. 우리집에 와서는 매주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움에서 해방
오히려 진정되어 가고 있는 것은 어머니입니다, 질병이 있는 어머니와 함q께 살고있는것이 익숙해지지 않아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어머니에게서받은 학대의 “증오”였습니다. 그래서 매운 추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질병 때문도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고, 분노를 기억하고, 증오에 휩싸여 마음이 아프고 견딜 수없이 이대로 가족됨에 미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어械頃몦w 싸우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회개하고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일을 반복되고, 어린 시절받은 학대를 용서하지 못한 것을 용서辜a고 나니까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일년 정도하고 지났나요..? 나는 천식과 같은 증상이 발생되었습니다. 너무 괴로워 남편에게 기도달라고 했더니,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한 것 때문이야”라고 말씀듣고 하나님께 정직하게 기도했습니다.

“어머니로부터받은 학대를 용서하고 싶지만 할 수 없습니다. 증오심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나의 마음이 어머니를 용서辜a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용서한 것처럼, 당신도 용서하십시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때의 교회에서 어머니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 기억 났습니다. 나 때문에 어두운 얼굴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깊은 회개의기도를 한이후,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고통받는 것도 없어지고, 나는 증오의 올가미에A서 해방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와의 동거
“아버지와의 동거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당뇨병을 앓고 있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합병증이 진행되고있었습니다. 심근 경색 두번? 뇌졸중, 망막증되고 휠체어 상태가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부채가 있고, 친척들도 많이 불편을 느끼게했습니다.

고액 입원비가 필요하고 아버지를 데리러 갈 여비도없이 우리 부부는 난감했둢a. 갑자기 내려 온 고액 의료비에 우리 부부는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의지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형제 자매의기도와 하나님께 헌금을 받아, 아버지와도 같이 사는 삶이 실현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물의 재회였습니다. 살아온 땅을 떠나 쿠시로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아주 힘든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쿠시에 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4년반 항상 쿠마모토로오고 싶어 우리 가족을 곤란하게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간호
자택 요양이 된 아버지는 매주 교회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아버지도 오래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당뇨병 초기 입원하고 있을때 복음을 전하고, 치유기도와 찬양 테이프를 통?서 하나님을 알고 마음을 열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쿠시에 와서 아버지가 쿠마모토가 가고 싶어서 완강했지만 마지막b 에는 교회 예배를 위해, 옷을 입고 기다리고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버지의 입욕 개호, 관리 등 교회에 갈 때나 병원에 갈 때 등 외출은 아버지를 짊어지몔?잘 해주고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던 아버지는 “세이? 세이”라고 남편의 이름을 잠자리에서도 항상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방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식사 보조, 옷입기 등을 온 가족이 아버지를 돌보는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병을 통해 하a나님 아버지를 우리 가정에 섬길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의식이 있는 때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가시던 그 때, 내 안에 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사라지고?있으며 조금만 더 지상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 응답
하나님은 내가 젊었을 때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떨어져 지낸 아버지와 어머니?i 저에게 하나로 주셨습니다. 결혼 후 함께 부모와 거주하는 것은 보물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주님 께서 손을 움직여 영광을 나타내 주셨습니몞a. 내가 고독과 증오에서 해방뿐만 아니라 부모간의 회복, 나는 친자 관계의 회복을 모두 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몞a.

숲 시온 (월간 “구름 사이에 무지개”2010 년 3 월호에 게재 매판)

God is Love.